강남의 빌딩 숲을 벗어나 낯선 남쪽 끝을 향한 위험한 유혹
다들 오늘도 아스팔트 위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그동안 서울과 경기권 위주로 동네를 빙빙 돌거나
징검다리 배차를 타는 퀵서비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오늘은 바이크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길고 험난했던,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렸던 초장거리 급송 주행기를 하나 풀어볼까 해요.
여느 때처럼 강남 테헤란로의 꽉 막힌 차들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며
매연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던 늦은 오후였습니다.
콜 창을 들여다보는데 강남구 논현동에서 출발해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으로
곧바로 꽂히는 아주 긴 장거리 급송 콜이 하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거리가 무려 팔십 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데다가 목적지가 충청권이다 보니
단가가 평소에 보던 숫자와는 차원이 다르게 높게 찍혀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천안에서 서울로 다시 어떻게 올라오나 싶어 절대 잡지 않았을 텐데,
마침 복잡한 강남 도로에 너무 지쳐있던 찰나여서 뻥 뚫린 1번 국도를 타고
시원하게 스로틀을 당기며 장거리 투어를 다녀오자는 얄팍하고도 충동적인 마음이 앞서고 말았어요.
게다가 내 곁에는 고속 크루징에 최적화된 330cc의 넉넉한 배기량을
가진 혼다 ADV350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기체 성능만 믿고 겁도 없이 수락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죠.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USB와 서류 봉투를 건네받아 탑박스에 깊숙이 찔러 넣고,
서둘러 서울을 벗어나 남쪽을 향해 바이크의 머리를 돌렸습니다.
스로틀의 고통과 성환 배밭의 비포장도로가 주는 뼈아픈 교훈
양재 나들목을 지나 과천을 거쳐 1번 국도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끝없는 직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원, 오산, 평택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남쪽으로 쏘아 내려가는데,
확실히 도심형 125cc 스쿠터들과는 급이 다른 ADV350의 안정적인 고속 주행 능력이 빛을 발하더군요.
대형 화물차들이 옆을 쌩쌩 지나가며 뿜어내는 매서운 측풍 속에서도
묵직한 차체는 궤도를 잃지 않았고,
교체해 둔 롱 윈드스크린 덕분에 정면으로 쏟아지는 바람의 압박도 훌륭하게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주행 속에서도 제가 아주 치명적으로 간과했던 실수가 하나 숨어 있었어요.
바로 쉬지 않고 한 시간 반 이상을 달려야 하는 초장거리 주행에서
스로틀을 쥐고 있는 오른손 손목의 피로도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평소 도심 주행에서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니 손목을 풀 시간이 충분했지만,
1번 국도에서 일정한 고속을 유지하기 위해 스로틀을 꽉 쥐고 놓지 않은 채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니 나중에는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찌릿찌릿 저려오고
손목 인대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장거리 투어를 자주 다니는 라이더들이 왜 그토록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에 불과한 스로틀 어시스트,
즉 크루즈 컨트롤 클립을 손잡이에 필수적으로 끼워두는지
그 이유를 고통 속에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손바닥 바깥쪽으로 슬쩍 기대기만 해도 속도가 유지되는그 작은 장비 하나가 없어서,
저는 천안으로 내려가는 내내 오른손을 쥐어뜯고 싶은 고통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죠.
우여곡절 끝에 충청남도 경계선을 넘어 목적지인 성환읍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길 찾기라는 거대한 난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환읍은 배 과수원으로 아주 유명한 동네인데,
하필 도착해야 할 곳이 그 드넓은 배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립식 창고였거든요.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포장이 뜯겨나간 울퉁불퉁한 흙길과 농로로 저를 안내했고,
무거운 알루미늄 탑박스까지 달고 있는 바이크로 비포장도로를 타려니
앞바퀴가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어드벤처 스쿠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ADV350의
쇼와 서스펜션이 꿀렁거리는 흙길의 충격을 제법 쫀득하게 잘 잡아주어,
한 번의 제자리꿍도 없이 무사히 농로를 뚫고 고객에게 급송 물건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지옥의 공차 복귀와 징검다리 상경, 그리고 무사 도착의 안도감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 것도 잠시, 이제 진짜 지옥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주변은 온통 컴컴한 과수원뿐인데,
퀵서비스 기사들 사이에서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천안 바닥에서
서울 강남으로 한 번에 올라가는 복귀 콜이 있을 리가 만무했죠.
길바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찬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이 넘도록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져라 새로고침을 누르며 애를 태웠습니다.
결국 서울로 가는 직행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성환에서 평택으로 찔끔 올라가는 만 원짜리 똥콜을 잡아 겨우 충청도를 벗어날 수 있었어요.
평택에서 다시 오산, 오산에서 수원, 수원에서 안양으로 끝없는 징검다리 배차를 타며
북상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극한의 인내심 테스트였습니다.
이미 서울에서 천안까지 내려오며 체력을 다 써버린 상태에서,
밤공기를 가르며 자잘한 짐들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허리는 끊어질 듯 뻐근했고
엉덩이는 불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화끈거렸습니다.
하지만 멈춰서 쉴 수도 없었던 것이,
늦은 밤이 될수록 징검다리 콜마저 끊겨버리면 경기도 어딘가의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짐을 싣고 복귀해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었죠.
헬멧 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고,
주유소에서 산 차가운 캔커피 하나로 버티며 악착같이 북쪽으로 바퀴를 굴렸습니다.
밤 열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간, 마침내 익숙한 서울의 네온사인 불빛과 롯데월드타워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헬멧 속에서 저도 모르게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해 늦은 밤까지 계기판의 트립 미터는
무려 이백오십 킬로미터를 넘게 가리키고 있었고,
제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아팠어요.
하지만 지하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앱을 열어 오늘 하루 종일 충청도와 경기도를 넘나들며
악착같이 모은 엄청난 운임 수익을 확인하는 순간,
내 두 바퀴로 이 지독하고도 험난한 초장거리 생존 게임을
무사히 이겨냈다는 짜릿한 쾌감과 뿌듯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혹시라도 퀵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단가 높은 지방행 장거리 콜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초보 라이더 동생이 있다면,
선배의 처절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꼭 이 조언을 해주고 싶네요.
목적지로 내려가는 시원한 쾌감 뒤에는 반드시 텅 빈 짐칸으로
매서운 밤바람을 맞으며 올라와야 하는 끔찍한 공차 복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내 바이크에 손목 피로를 덜어줄 스로틀 어시스트가 있는지,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몇 시간이고 콜을 기다릴 수 있는 강인한 인내심이
준비되어 있는지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섣불리 남쪽으로 향하는 스로틀을 당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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