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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마주한 봄바람의 유혹

그동안 혹독한 영하의 날씨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을 뚫고

무거운 배달 짐을 나르던 생존형 라이딩 이야기를 주로 전해드렸는데,

오늘은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달리는 즐거움만 가득 채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겨울 내내 제 ADV350에는 거대한 토시와 열선 그립,

그리고 온갖 방한 장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도심의 매연과 정체 속에서 스쿠터도 저도 몹시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차가운 시트에 앉아 시동을 걸 때마다,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추위가 끝나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시원하게 외곽으로 나갈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곤 했어요.

그러다 며칠 전부터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두꺼운 겨울용 라이딩 재킷을 입고 신호 대기를 하고 있으면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힐 정도로 완연한 봄이 찾아온 것이죠.

도로 양옆으로는 앙상했던 나뭇가지마다 연분홍빛

벚꽃 몽우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요.

이 눈부신 봄날의 유혹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주말 아침 일찍 예전부터 함께 바이크를 타온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생계형 짐차로 변해버린 제 ADV350의 본래 목적인 어드벤처 투어링의 낭만을 되찾기 위해,

탁 트인 양평 국도를 타고 흩날리는 벚꽃잎을 맞으며 맛있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오자는 아주 소박하고도 거창한 투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라이더들의 성지 양만장, 그리고 벚꽃비 내리는 국도를 달리며

일요일 이른 아침, 약속 장소인 외곽 국도 초입 주유소에서

오랜만에 친구의 바이크와 제 ADV350이 나란히 섰습니다.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세차장에서 뽀득뽀득하게 씻어내고

거대한 알루미늄 탑박스 안에는 무거운 배달 짐 대신

가벼운 펑크 수리 키트와 생수 한 병만 덜렁 실어두었더니,

바이크의 몸놀림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더군요.

스로틀을 부드럽게 감아쥐며 본격적으로 양평을 향해 뻗어있는 국도에 올랐습니다.

롱 윈드스크린 너머로 펼쳐지는 봄날의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어요.

산등성이마다 울긋불긋 피어오른 봄꽃들이 스쳐 지나가고,

따뜻한 봄바람이 헬멧의 벤틸레이션 구멍을 타고 들어와 머리칼을 기분 좋게 식혀주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시원하게 국도를 내달려 우리가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라이더들 사이에서 이른바 양만장이라고 불리는 양평 만남의 광장 휴게소였습니다.

이곳은 주말 아침이면 수도권의 모든 바이크가 다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진풍경이 펼쳐지는 라이더들의 성지 같은 곳이에요.

넓은 주차장에 수백 대의 바이크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고,

다양한 배기량과 브랜드의 엔진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걸 듣고 있으니 제 가슴도 덩달아 뜨거워지더라고요.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씩 빼 들고 친구와 함께 주차된 화려한 바이크들을 구경하며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천만 원이 훌쩍 넘는 고배기량 투어러들 사이에서도 특유의 날렵한

무광 그레이 도장면을 뽐내며 듬직하게 서 있는 제 ADV350을 보니 묘한 자부심마저 들었답니다.

휴게소를 빠져나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유명산 인근의 와인딩 코스로 진입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심에서 느끼지 못했던 ADV350의 도립식 쇼와 서스펜션이 진가를 발휘하는 구간이에요.

구불구불한 산길 코너를 돌아나갈 때 차체를 살짝 눕히면,

일반적인 도심형 스쿠터 특유의 뒤가 털리거나 출렁거리는 불안감 없이

프레임이 바닥을 아주 끈적하게 붙잡고 돌아나가는 안정감이 일품입니다.

친구의 매뉴얼 바이크 뒤를 바짝 쫓아가면서도 클러치를 조작할 필요 없이

오직 스로틀과 브레이크, 그리고 체중 이동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주변의 아름다운 벚꽃 터널을 감상할 여유가 훨씬 넘쳐나더라고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들이 헬멧 쉴드에 톡톡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했습니다.

봄길 코너에 숨어있는 불청객과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의 여유

하지만 이렇게 낭만적인 봄날의 라이딩에도 아찔한 위기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풍경에 흠뻑 취해 친구의 뒤를 따라 약간 깊은 우측 코너를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진입하던 찰나였어요.

코너의 정점을 지나 탈출을 위해 스로틀을 부드럽게 여는 순간,

뒷바퀴 쪽에서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훅 하고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식은땀이 쫙 흘렀죠.

반사적으로 스로틀을 살짝 풀고 시선은 가고자 하는 탈출구를 끝까지

바라보며 허벅지로 연료통 부근을 강하게 쥐어짜듯 차체를 세웠고,

다행히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 개입하면서

바퀴가 다시 그립을 되찾아 무사히 코너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간과했던 아주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어요.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도로의 노면 상태까지

완벽할 것이라고 섣불리 착각한 것이죠.

겨우내 얼어붙은 눈을 녹이기 위해 도로 가장자리에 엄청나게

뿌려두었던 제설용 염화칼슘 찌꺼기들과 모래알들이,

봄바람에 날려 코너의 바깥쪽 가장자리에 눈에 보이지 않게 잔뜩 쌓여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모래가 깔린 아스팔트는 마치 구슬 위를 달리는 것처럼

접지력이 순간적으로 0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코너를 깊게 눕혀 돌아나가다 모래를 밟으면 백발백중

큰 슬립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베테랑이라고 자부하면서도 그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아름다운 벚꽃길에서 뼈아픈 대가를 치를 뻔했던 아찔한 경험이었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럽게 산길을 빠져나와,

양평 투어의 필수 코스인 단골 해장국집에 바이크를 세웠습니다.

헬멧을 벗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진한

선지 해장국 한 뚝배기를 마주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살 것 같더군요.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달려온 뒤에 친구와 마주 앉아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훌렁훌렁 떠먹는 그 맛은,

세상 어떤 최고급 요리와도 바꿀 수 없는 라이더들만의 특권이자 투어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밥을 먹으며 방금 전 코너에서 미끄러졌던 상황을 복기하고,

내 바이크의 전자장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호탕하게 웃어넘겼습니다.

다시 찾은 라이딩의 낭만, 그리고 초보자를 위한 당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서울로 복귀하는 길은,

아침에 출발할 때의 쌀쌀함은 온데간데없이 따스한 봄 햇살이 등을 포근하게 밀어주는 듯했습니다.

겨우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짐꾼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던

제 ADV350이 오늘만큼은 그 누구보다 멋지고 자유로운 어드벤처 투어러로서의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 주어서 몹시 기특하고 뿌듯했어요.

복잡한 생각들은 헬멧 밖의 주행풍에 모두 날려 보내고,

오로지 길과 엔진의 고동감에만 집중했던 오늘의 꽃구경 투어 덕분에

다시금 치열한 일상을 버텨낼 커다란 에너지를 듬뿍 얻어왔습니다.

혹시라도 따뜻해진 날씨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봄맞이 장거리 투어를 준비하고

계신 초보 라이더 동생들이 있다면 이 십 년 차 선배가 꼭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네요.

봄철의 외곽 국도와 산길 코너에는 겨울이 남기고 간 불청객인 모래와

미세한 자갈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으니,

절대 무리하게 차체를 눕히지 말고 평소보다 속도를 낮추어 노면을 넓게 바라보며

여유롭게 돌아나가는 방어 운전의 미덕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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